[ETRI] 6/7/8주차, ETRI 인턴생활 종결, 그리고 회고

2021 동계 ETRI 연구 연수생 생활을 기록합니다. (보안상 진행되는 연구실 내 프로젝트 내용은 생략합니다. )


누구나 지난 일은 까먹는다. 나도 이제 연수생 끝난 지 한달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기억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기억남는 것들을, 짧지만 시간순과 상관없이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1 제가 좋아하는 유투버가 KASI 출신인데 말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유투버가 있다. 바로 유투버의 안될과학채널 궤도님이신데, 물리학내용의 7시간 강의도 라디오 삼아서 듣게 할 정도로 매력있으시다.
언제 한 번 검색해보니 이 궤도님이 한국 천문 연구원(KASI) 출신이셨다. (KAI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또 다른 거더라.)

그런데 서치해보니 네? ETRI 부설 뭐요?
🍊 나 나, 내가 좋아하는 유투버랑 연관고리가 하나 생긴 것 같애!!
마음도 들뜬 김에 언제 한 번 멀지도 않은 한국천문연구원에 한 번 가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과연 나는 갔을까?
...
못 갔다. 집가려고 한 버스를 잘못탄 김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갔는데 결국 한국천문연구원은 못 갔다.


#2 ETRI에선 주간 발표를 했었죠.

매주 있었던 인턴 주간 성과발표회. 코로나로 인해, 또 실장님과 연구원분들의 일정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모든 회차마다 진행하진 못했지만 우리 연수생들은 매주마다 발표를 준비했었다. 7번 모두를 하진 못했고, 4번 정도를 했었던 것 같다. 연수생 3명 (후반에는 2명)이서 발표를 하다보면 각자 맡은 역할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용어부터 난관을 느낀다. 특히나 알고리즘 개발을 맡고있는 한 분의 얘기를 듣다보면 노트에 모르는 키워드만 적어도 몇 줄은 든든히 채워졌다.
그때의 발표 분위기를 생각하면, react기반의 front작업을 맡았던 나는 시각적인 자료가 많이 나오는 개발이다보니 발표할 때마다 기특해해주시는 실장님이 기억에 남았다.

첫 발표 때는 이런 일기도 썼었다.

....

고정관념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경험상 여자 연수생에게는 기대가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의외였으며 오히려 잘한다고 말하셨다. 옆에 계셨던 선임님도 그걸 몇 주 만에 다 해버렸다고 웃으며 언급하셨다. 
주말에 커밋한 거 들킨 것은 민망했다. 더 잘 하고 싶다
...

ㅋㅋㅋㅋㅋ '더 잘 하고 싶다.'
코로나로 시작부터 재택근무를 맡았던 나는 마음이 급했다. 첫 자취에 설렘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얼마되지 않아서 내가 한심하게만 보였다. 당장 뭔가를 해보이고 싶었는데, 사전의 분석 문서도 없이 이미 몇 십만자로 구성되어 있는 그 프로젝트의 분석을 온전히 해내기가 어려웠다. 완전히 초면인 프레임워크와 라이브러리에 대한 이해, 그것을 기반으로 작성된 폴더구조 파헤치기, 레거시 코드 찾아내기, 이미 작성된 코드의 로직을 응용할 때가 제일 불안했다. 어떻게 터질지 몰라서. 하루종일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봐도 분석조차 확신이 서질 않았다. 몇 십번이고 몇 백번이고 큰솔을 찍어 개발자모드를 들여다보는 내가,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하는 내가 언제 뭘 한다는 건지 한심했다. 요령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어느정도 적응이 되고 난 후, 어느 시점부턴가 개발을 진행하는 데 정체기가왔다.
그땐 이런 마음이었다. 잘하고 싶은데, 잘하는 건 둘째치고 더 하긴 할 수 있을까?

#3 요령이 없으면 생길 때까지 해야죠

같은 시기에 처음하는 Spring공부도 그랬다. 시작부터 해야하는 것들 사이에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할 지 모르겠더라. 무엇 하나라도 뒤로 미루기엔 누군가한테 미안해지는 것 같았다. react든 js든 css든 docker든 spring이든 개발도서와 공식문서, 각종 레퍼런스를 찾아다니며 새벽을 제외한 매일매일을 바쳤다. 졸업작품을 위해 aws와 docker도 함께 새로 시작했다. 어떤 한 가지를 위해 다른 것을 중단한 기간엔, 나 스스로가 이전 것에 대해서 초기화되는 걸 느꼈다. 시간 관리가 도저히 되질 않았다. 왜 자꾸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를 못하나.
당장 오전까지지만해도 발전하는 내 모습에 즐거웠던 것 같은데 멀지 않아 다른 곳에서 곧 압박감이 찾아왔다. 개인으로서도 팀으로서도 인턴으로서도 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자주 번복되었다. 혼란스러워하는게, 나중엔 그게 남한테도 눈에 보였고 티를 내버렸다는 게 민망하고 창피하고, 반성할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 준 멘토선배를 비롯한 주변인한테는 다시 생각해도 고맙고. 멀지 않아 회복한 뒤에는 오히려 하던 front작업 외에도 backend API개발까지 맡아 알차게 보냈다.

수고했고 잘했다고, 이번 인턴 너무 잘 뽑은 것 같아 좋았다고 웃으시던 실장님. 메일에 번호도 남기고 가라던 그 말씀이 기억난다.
커피는 왜 그르케 많이 주십니까, 다 못 먹으면 아깝잖아요!
그랬다. 마지막날은 실장님을 비롯해 모든 연구원님들과 동기 연수생 오빠한테 인사할 때까지 종일 웃을 수 있었다.
🧑🏻: 악수 한 번 하고 가죠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진짜 끝이네요, 잘 지내세요!

#4 그런 얘기도 했었는데

🍊 : 난 여기 있는 게 좋아요!, 난 학교에 있을 때는 좀, 그런 게 있더라구요.
🧑🏻: 어떤거요?
🍊 : 결국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데, 코딩이든 그냥 비교과 과제든 같이 하는 일에 대해서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하기 싫은 게 티가 나는거요. 그때부터 눈치가 보이거든. 나도 즐길 수가 없더라구요.
👩🏻 : 맞아요, 맞아
🧑🏻 : 와. 맞아요, 저도 딱 그랬어요
이제 와선 나도 문제였겠지만.

🍊 : MBTI뭐예요?
🧑🏻: 저 I.. 그 다음 뭐게요?
🍊 : 1@#* (기억 안 남)
👩🏻: ㅋㅋㅋㅋㅋㅋ 오, 그리고 저는 E ... .(기억 안 남)
🧑🏻: 와, 인싸구나. 그럼 귤님은요?
🍊: I랑 J는 확실한데 나머진 모르겠네요
🤦🏻‍♂️🤦🏻🤦🏻‍♀️ : 님 절대 아님. I 아님.
🍊: ㅋㅋㅋㅋ I기반의 생존형 E랍니다.

# 그래서 저의 스택업/경험 항목들은요

- JS, React, CSS
- postgreSQL
- Backend Rest API개발 + swagger관리
- docker
- TDD (jest, k6)

매도 먼저 맞으면 좋다고, 이렇게 한 번 코딩으로 알차게 보내보니 앞으로가 전만큼 두렵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많이 배웠고 손에 익혔다고 말할 수 있었다. 가끔 그런 사람 있잖아,

😀 : 와! 그동안 뭐했어?
🤷🏻: 몰라.. 걍 시간이 지나가있네 ㅋㅋ 암것도 안 함
🧐 : .. 옹,.,

이런 사람. 나는 그렇지 않고 누가 뭘 배웠고 뭘 했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나열해서 말할 수 있으니까 좋았다. 물론 정말 내 스택으로써, 내가 마음대로 응용할 수 있도록 더 접해야겠지만 말이다.
두 달 동안 자존감/자신감이 흔들리면서도 그런 과정조차 좋았다. 몇년 전에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던 뼝뼝뼝뼝뼝아리🐣였으니까. 스스로 부족한 줄도 몰랐던 몇 년 전의 나와 달리, 전혀 다른 이유로 고민하고 우는 스스로가 이따금씩 신기하단 거다.

지금 이렇게 학교에 돌아와선 내게 제로부터 가르쳐줬던 선배가 그랬던 것 처럼 나도 그러려고 한다. 너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눈에 안 보인단들 답답해 하기만 할 건 아니라고, 벽을 느끼고 막막할지언정 뭔갈 배우고 있는 네가 멋있다고 ㅎㅎ.